기고

에어라인 기장 켑틴 정인웅의 기고] 화물기의 사치스런 색조화장

작성자
YJN
작성일
2022-08-19 04:43
조회
313

코로나가 정점을 지난 지금 해외여행에 나서는 한국인들이 공항 터미널로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색상과 디자인을 한 각국을 대표하는 항공사들의 중장거리 항공기들이 인천공항 T1과 T2 터미널을 가득 채울 날이 머지않았다.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낯선 모습이겠지만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항공기들 중에는 간간히 전혀 색채 도장이 되지 않은 어딘가 어색한 항공기들이 있다.

에어라인 기장인 내가 처음 흰색 항공기를 만난 것은 어느 아프리카 공항에서였다.

주로 러시아산 일류신이나 안토노프 화물기들이었다.

처음에는 이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그러는가 보다고 생각을 했지만 동료 중에 과거 이들 화물기를 몰아보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숨겨진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기 여객기와 달리 화물기는 정해진 노선이 없다. 돈을 지불하는 화주가 원하는 화물을 원하는 곳에 옮겨주면 수입이 발생한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항공기에 굳이 어느 항공사 소속인지를 밝히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불필요한 시선을 피할 수 있어서 인지 상대적으로 아직도 국가의 통제가 허술해서 불법적인 물품의 항공수송이 빈번한 아프리카에서 유독 이런 하얀 항공기가 자주 보인다.

지난주에 홍콩에서 만난 화물기는 조금 더 색달랐다. 바로 옆에 주기하고 있던 737-300 화물기의 조종석 창이 무언가 이상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뭔가를 특수하게 장착한 모습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사진을 찍어 확대해 보았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부 기장석 방풍유리 프레임 전체가 제 짝이 아니었다. 흰색 동체에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붉은색 조종석 유리 프레임 이 생뚱맞게 장착돼 있었다.

아마도 해당 항공기는 최근에 비행 중에 조류충돌사고를 겪은 듯하다. 손상된 창문을 교체해야 하는데 이제 단종된 737-300의 부품을 구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어렵게 구한 부품은 새 제품이 아니라 어느 항공사의 자제창고에 보관 중이던 과거 항공기에 장착된 적이 있는 제품이었을 것이다.

장착 후에 페인트로 덧칠만 하면 이런 엉뚱한 조합이 눈에 띄는 일은 없었을 텐데 이 회사는 그것조차도 시간낭비라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777 화물기 한대가 1회 수송해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최근 항공 화물운임이 많이 상승한 걸 감안하면 얼추 계산을 해 킬로당 10만 원이라고 치면 화물칸에 최대 100톤을 채울 수 있으므로 최대 100억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항공기 도장을 새로 하기 위해서는 최소 며칠에서 최대 1주일 가까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항공사로서는 포기하기 어려운 엄청난 금액이다. 하루 50억에서 100억의 수익을 어떻게 항공기에 '색조 화장'을 해주기 위해 포기할 수 있겠는가?